아짠 차 선사의 깨달음 체험기
나는 단지 알아차리고 관찰했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여전히 좌선을 이어 가면서 관찰해 나갔다.
세 번째로 마음이 안으로 들어가자, 급기야 온 세상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땅이며 풀, 나무, 산, 사람 등 일체가 허공이었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상태 속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문 후, 마음은 밖으로 빠져 나와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왔다.
마음이 안에서 어떻게 머물고 있었는지를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체험은 눈으로 보거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이같은 체험과는 비교될 수 없다. 이 세 차례의 경이로운 체험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어느 누가 감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체험을 통해 알아차린 ‘마음의 본성’이란 것은 본디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것인 만큼, 그것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확고부동한 불퇴전의 신심을 지니고 수행했고, 목숨까지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든 지식과 이해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위빠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호두마을선원)-
있는 그대로 보아 놓아 버리라!
수행은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거나,
‘원하지 않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원함’과 번뇌를 ‘원하지 않음’은
둘 다 똑같이 지혜(알아차림)가 결여된 욕망입니다.
붓다의 딜레마도 바로 이 극단적 양면성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 욕망들이 단지 일어났다 사라지는
무상한 것들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中道)로써
깨달음에 이르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물은 단지 본래 성질(無常, 苦, 無我)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원함’에 집착하는 한
결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놓아 버리라’는
붓다의 가르침이야말로 항시 명심해야할
수행의 대(大)원칙인 것입니다.
이같은 알아차림(지혜)을 끊임없이 계발해 나가는 것이
바로 위빠싸나 수행입니다.
-아짠차 선사-
---푸른바다의 프리즘---
아짠 차 선사는 ‘있는 그대로 보는[如實之見]’ 지혜와 ‘비우고 내려놓기[放下着]’를 가장 중요한 수행원칙으로 강조한다. 이 두 원칙은 선 수행의 핵심이기도 하다.
태국의 위빠사나는 혜능 선사의 <육조단경>을 비롯한 여러 선종 어록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남방 위빠사나와 북방 선의 장점을 결합한 수행방편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염불위빠사나는 강력한 집중과 알아차림으로 단기간에 수행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짠차 선사의 법문을 보다 보면 선종의 선사가 하는 법문인지 착각할 정도로 선의 정수를 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길은 달라도 종착지는 같아서 일까.
'♧ 태국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국의 불상 (0) | 2008.04.16 |
---|---|
[스크랩] 태국의 아침[고결한 탁발] (0) | 2007.06.19 |
[스크랩] 미얀마[버마] 수도 양곤의 불교 (0) | 2007.06.19 |
[스크랩]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 (0) | 2007.06.19 |
[스크랩] 아유타야 불교유적 (0) | 2007.06.19 |